1943년 9월, 상하이
비가 오는 밤이었다.
상하이의 구월은 아직 더웠다. 낮에는 습하고 뜨거웠다가 밤이 되면 빗속에 섞여 차가워졌다. 나는 좁은 골목 처마 아래서 빗소리를 들었다.
서른셋이었다.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스물다섯에 상하이로 왔다. 그때는 이 도시에 우리 사람이 많았다. 임시정부가 여기 있었고,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밤이면 골목 어딘가에서 조선말이 들렸다. 십여 년 전 임시정부는 일본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를 떠났다. 항저우로, 다시 더 안쪽으로. 지금은 충칭에 있다고 했다. 멀었다. 소식도 더디게 왔다.
떠날 사람들은 떠났다. 나는 남았다. 떠나지 못한 것인지 떠나지 않은 것인지, 그 구분은 이제 흐릿했다. 상하이에 남은 사람들이 몇 더 있었다. 본부와 끈이 끊긴 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누구의 명령도 아니고 누구의 기록에도 남지 않는 일이었다.

가족을 한국으로 보낸 게 작년이었다. 아내와 아이.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헤어지던 날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왜 안 가. 나중에 간다고 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을 기억한다. 믿는 눈이었다.
나중에. 그게 언제인지 나도 몰랐다.
골목 끝에서 발소리가 났다. 빠르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발소리였다. 나는 처마 기둥 뒤로 몸을 붙였다. 손이 코트 안 깊숙이 들어갔다.
"성재 형."
낮은 목소리였다. 학수였다. 나보다 세 살 어렸다. 평안도 출신이었다. 경성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쫓겨 상하이로 온 사람이었다.
"왔어."
"장소 확인했어요."
나는 처마 아래에서 나왔다. 빗속에 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 벽이 얇아요." 학수가 낮게 말했다. "거기 쪽으로 하면 돼요."
그 창고는 겉으로는 일본인 상인의 물류 창고였다. 안에 든 것은 아편이었다. 상하이로 들어온 아편이 거기서 갈라져 도시 곳곳으로 나갔다.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었다. 군자금이었다. 그리고 그 일부가 더 나쁜 데로 갔다. 밀정. 조선 사람을 사서 조선 사람을 팔게 하는 데. 그 돈이 그 창고에서 나왔다.
그 창고가 목표였다. 군수물자 창고는 또 생긴다. 그러나 이 창고는 돈줄이었고, 돈줄이 끊기면 사람을 사는 손도 잠시 멈춘다. 그 잠시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었다.
"경비는." 내가 물었다.
"두 명이에요. 교대가 새벽 두 시예요."
"민간 쪽은."
"창고 남쪽 골목에 주택이 있어요. 세 채."
나는 멈췄다.
"거리가 얼마나."
"오십 미터 정도요."
"오십이면."
"폭약 양 조절하면 괜찮을 거예요."
괜찮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빗속을 봤다. 창고 쪽을 봤다. 거기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이 꺾여 있어서.
"세 채에 사람이 몇이야."
"확인이 안 됐어요."
"확인해."
"언제까지요."
"작전 전날까지."
학수가 잠깐 있었다.
"형, 일정이 빠듯해요. 다음 물량이 들어오는 게 이달 말이에요. 그 전에 해야."
"알아."
"그러면."
"확인하고 나서 결정해."
빗소리가 굵어졌다. 처마에서 물이 줄기를 이루며 떨어졌다. 학수가 코트 깃을 세웠다.
"형은 왜 항상 이렇게 꼼꼼해요."
나는 학수를 봤다.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알아요."
"잘못되면, 우리가 한 일이 의미를 잃게돼.."
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생각했다. 잘못되면.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는 너무 잘 알았다. 팔 년 동안 상하이에 있으면서 봤으니까. 잘 짠 작전이 무너지는 걸. 작전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무너지는 걸.
"형, 한국에서 연락 왔어요?"
나는 빗속을 봤다.
"아직."
"아이는 잘 있겠죠."
"응."
"빨리 끝내고 가요, 형."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상하이의 구월의 밤비가. 골목은 젖었고 불빛이 없어 어두웠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힌 종이가 있었다. 꺼내지 않았다. 손으로 만지기만 했다. 아내의 편지였다. 여러 번 읽어서 외울 수 있었다. 그래도 손으로 만지는 게 달랐다.
나중에 간다고 했다.
나중이 언제인지는 여전히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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