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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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태준

찾을 수 없는 이름

숙소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테이블 위에 맥주 캔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경환이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항공권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일 여섯 시 반. 일찍 일어나야해."

"응."

태준은 침대에 누웠다. 폰을 꺼내 찍어둔 사진을 열었다. 흑백 사진 속 가운데 남자. 박성재라는 이름.

검색창을 열었다. 박성재. 세 글자를 입력했다. 자동완성에 모르는 이름들이 떴다. 회사원, 교수, 병원, 블로그. 다 다른 사람 같았다. 태준은 검색창을 닫았다.

내일 공항에 가야 했다. 여섯 시 반. 친구들이랑. 한국으로.

박성재.

태준은 오래 누워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닮았대요. 옛날에 여기 살던 사람이랑요. 한국 사람이었대요. 눈매가 똑같대요.

노인의 말이 돌았다. 그리고 사진 속 남자의 얼굴. 박성재. 1943년. 해방 이 년 전. 어딘가 자기와 비슷한 얼굴.

내일이면 돌아간다. 봉래동 사무실. 그 자리로.

박성재.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친구들은 자고 있었다. 승필이의 숨소리가 낮게 이어졌고 경환이는 가끔 뒤척였다. 태준만 깨어 있었다.

친구들을 깨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설명할 만큼 정리된 이유도 없었다. 사진 속 남자, 박성재, 닮았다는 노인, 낡은 상자. 입 밖에 내면 전부 이상해질 것 같았다. 말로 하면 길어질 것 같았다.

단톡방을 열었다.

"나 며칠 더 있을 것 같아. 내일 아침 너희들 먼저 가."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그래도 지우지는 않았다.

태준은 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박성재. 이름 석 자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잠깐 뒤에 옆에서 진동이 울렸다. 경환이가 잠결에 폰을 확인하는 기척이 났다. 어둠 속에서 화면 불빛이 잠깐 떴다.

"갑자기?"

같은 방에 있는데도 말은 화면으로 왔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얼굴을 보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응. 아침에 얘기할게."

답이 한참 없었다. 경환은 폰을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알겠어. 일단 자라."

화면 불빛이 꺼졌다. 곧 경환의 숨소리가 다시 길어졌다. 다시 잠든 것 같았다. 승필이는 내내 깨지 않았다. 단톡방 메시지를 아직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낮의 일이 떠올랐다. 너 가자고 한 게 누군데. 혼자 다니다 또 길 잃지 말고. 그 말들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승필이가 이 메시지를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알 수 없었다.

폰을 엎어두었다.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누군가 이불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났다.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흑백 사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름도 같이 떠올랐다. 박성재. 검색창에 입력했다 지운 세 글자. 자동완성에 떠 있던 모르는 사람들 그중 아무도 사진 속 남자 같지 않았다.

아침이 조금씩 오고 있었다. 창밖 중정에서 누군가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파이프 안으로 물이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태준은 결국 잠들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둘이 떠났다. 택시를 잡아줬다. 경환이 캐리어를 실으면서 뭔가 더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가 묻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몸조심해."

"응."

승필이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한참 태준을 봤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단톡방을 본 모양이었다.

"진짜 안 가?"

"응."

"……그래." 승필이 택시에 탔다. 창문을 내렸다. "도착하면 연락해. 살아 있는지는 알아야지."

농담이었지만 서운함이 아직 묻어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줬다.

"미안."

"됐어." 승필이 손을 흔들었다. "사진이나 잘 찍어."

택시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태준은 거기 서 있었다.

상하이였다. 혼자. 아는 사람 없는 도시에 혼자. 처음으로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폰을 꺼냈다. 웨이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상자 안에 있던 한자 종이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잠깐 뒤에 답장이 왔다.

"왜요."

태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썼다.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보내고 나서도 문장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골목에 아침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빨래들이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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