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인천공항은 언제나 같은 냄새가 났다. 커피와 면세점 향수가 뒤섞인 냄새. 태준은 캐리어를 손에 쥔 채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옆에서 승필이가 무언가 떠들고 있었다.
"야, 듣고 있냐?"
"응."
"우리 게이트 어디라고?"
"몰라."
승필이가 혀를 찼다.
"너는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알기나 하냐?"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신 차려, 임마. 너 요즘 왜 그래?"
"원래 그래."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맞는 말이었다.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나. 그걸 몰라서 4년이 지났는데.
"야, 뭐 해. 빨리들 와." 경환이가 불렀다.
경환이가 면세점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승필이도 주문했다. 태준도 따라서 주문했다. 무엇을 시켰는지는 나오고 나서야 봤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였다. 아메리카노를 시킨 기억이 없었다. 그냥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켰던 것 같았다.
탑승구 앞에는 사람이 많았다. 단체 관광을 가는 듯한 친목회 아저씨, 아주머니들. 유모차를 민 가족 여행객.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 다 이유가 있어 가는 사람들이었다. 활주로에는 비행기가 탑승교에 연결되어 있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다른 곳으로 간다.
왜 상하이인지는 여전히 몰랐다.
저녁 일곱 시. 비행기가 날았다. 승필과 경환이는 이륙하자마자 캔을 뜯었다. 태준은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봤다. 도시의 불빛이 빠르게 뒤로 흘렀다. 기체가 기울었다. 검은 창에 구름이 스쳤다. 건물들이 작아지고 있었다.
태준은 그 감각이 싫지 않았다. 작아진다는 것, 멀어진다는 것. 지상에서 보면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고도가 높아질수록 점이 되고 선이 되고 나중에는 구분도 되지 않는다는 것. 거대해 보이던 대우빌딩도, 그 옆에 회사도 저 아래 있었다. 어머니가 사는 수원의 작은 아파트도 저 아래에 있었다. 4년 동안 매일 오르내린 엘리베이터도 저 아래에 있었다. 모두 저 아래에 있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오랜만이었다. 캐리어에 넣을 때 말고는 만지지 않았다. 전원을 켰다. 작은 작동음이 났다.
창밖으로 렌즈를 돌렸다. 멀어지는 도시의 불빛을 화면에 담았다. 흔들렸다. 비행기가 흔들려서인지 손이 흔들려서인지 알 수 없었다. 셔터를 눌렀다. 한 번. 두 번. 검은 창에 비친 자기 얼굴도 한 번. 찰칵.
찍고 나서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잘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한 장 찍을 때마다 화면을 들여다봤다. 다시 찍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그러지 않았다. 찍기만 했다. 결과는 보지 않았다. 카메라를 껐다. 가방에 다시 넣었다.
태준은 이마를 창에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구름 사이로 불빛이 드문드문 보이다가 사라졌다. 바다가 시작됐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바다.
승필이 어깨를 쳤다.
"태준아, 기내식."
비닐에 싸인 기내식을 받았다. 불고기 덮밥과 훈제 연어 샐러드. 고추장도 함께 있었다. 먹었다. 맛은 잘 모르겠었다.
상하이. 생각해본 적 없는 도시였다. 크고 가까운 나라, 그 나라의 한 도시로 가는 길이었다. 비행기 값이 싸서 비자도 필요 없었다. 친구들은 아직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태준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잠이 왔다. 꿈은 꾸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잠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기내 불이 다시 켜졌다.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승무원이 입국 신고서를 나눠 줬다. 태준은 볼펜을 꺼냈다.
이름. 박태준.
생년월일. 1994년 3월 11일.
방문 목적. 관광.
태준은 잠깐 멈췄다. 관광. 그게 맞겠지. 딱히 다른 이유가 없으니까.
창밖으로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