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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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태준

서른하나

12월이었다.

봉래동 사무실은 추웠다. 난방이 약했다. 창밖은 높은 빌딩에 가려져 있었다. 회의실도 마찬가지였다. 찬 공기가 가득했다.

팀장이 말했다.

"올해도 목표 미달이야. 올해 내내."

곧 다가올 결산 그래프 속 숫자들이 어지럽게 나열돼 있었다. 태준은 볼펜을 들고 수첩에 아무 의미 없는 숫자들을 적고 있었다.

"박대리, 어떻게 생각해?"

태준은 고개를 들었다. 임과장도 이주임도 태준을 보고 있었다.

봉래동 골목
봉래동 — 대우빌딩 그늘 아래 낡은 골목

"업체들과 협의해서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몰랐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계속됐다. 태준은 여전히 숫자만 적고 있었다. 임과장의 발표가 이어졌고 회의가 끝났다.

회의실을 나가는 태준을 팀장이 불렀다.

"박대리, 너 올해 연차 아직 남았지?"

"네?"

연차가 남았던가. 얼마나 남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팀장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인사팀에서 내려온 거였다.

"연말까지 다 써. 우리 회사 알잖아. 돈 주기 싫어서 연차 무조건 소진이라는 거."

평소에는 반차 하나 못 쓰게 하더니 이제 와서 연차라니. 그것도 연말까지.

"실적도 그 모양이더니 연차 관리까지 안 하고 뭐 했어." 팀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혼잣말이 아니었다.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자리로 돌아왔다. 남은 연차 4일.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창밖에는 높은 빌딩이 서 있었다.

회사는 봉래동 골목 낡은 건물에 있었다. 무역회사였다. 부품을 수출입하는 곳이었다. 거래처마다 부품의 종류가 달랐다.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부품도 있었다.

건물은 좁았다. 입구에 간판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여행사, 환전소, 회계사무소. 다 작은 글씨였다. 엘리베이터는 한 대였다. 느렸다. 몇 사람이 타면 가방이 닿았다. 4년 동안 매일 그걸 탔다.

서울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었다. 역을 빠져나오면 큰길 건너 눈앞에 대우빌딩이 있었다. 간판은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대우빌딩이라 불렀다. 태준은 큰길을 건너지 않았다. 대우빌딩 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정장을 입고 빠르게 걸었다. 태준은 그 옆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이 좁아졌다. 건물이 낮아졌다. 간판이 작아졌다. 거기에 회사가 있었다.

언젠가 대우빌딩을 올려다본 적이 있었다. 크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였다. 그 뒤로는 올려다보지 않았다. 매일 그 앞을 지나면서도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당연히 거기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처음에는 오래 다닐 생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쉽지 않았다. 좋은 대학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태준은 대학을 다니면서 카페 알바, 편의점 알바를 했다. 졸업하고서는 취직이 급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다. 첫 번째로 다닌 곳이 이곳이었다.

4년이 되었다. 이직을 생각했다. 준비를 했다. 이력서를 썼다. 지원을 했다. 떨어졌다. 다시 썼다. 또 떨어졌다. 어느 순간 준비하는 것을 멈췄다. 지원하는 것도 멈췄다. 그냥 멈췄다. 카메라 셔터가 멈춘 것처럼.

서른하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열여섯 살 때였다. 갑자기였다. 뇌출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흔들었지만 일어나지 않으셨다. 전날 밤까지 같이 밥을 먹었고 텔레비전도 봤다. 아무 말도 없었다.

태준은 그날 학교에 있었다. 선생님이 불렀다. 조퇴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아버지는 이미 의식이 없으셨다. 사흘 뒤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어색하게 대했다. 선생님이 불러서 얘기를 했다. 어려운 것 있으면 말하라고. 어려운 게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 그냥 지냈다. 학교에 가고 집에 왔다. 어머니가 밥을 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는 것들이 있었다. 키가 컸다. 아버지 어깨에 올라간 사진이 있었다. 다섯 살쯤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어깨가 넓었다. 거기서 보이는 세상이 달랐던 기억이 있었다. 높고 안전한.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집에 오시면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봤다. 가끔 무언가를 물어보셨다. 학교는 어떠냐고, 밥은 먹었냐고. 짧은 대화였다. 깊은 대화를 한 기억은 없었다.

열여섯이 되기 전까지는 아직 그런 나이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몰랐다. 어릴 때 어떻게 컸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머니를 어디서 만났는지, 꿈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볼 수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 생각났다. 대학 때. 취직하고 나서. 회사에서 의미 없이 앉아 있을 때 가끔. 왜 아버지한테 물어보지 않았을까. 당연히 거기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있는 것들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처럼. 당연히 있다가 없어졌다.

어머니한테 전화가 오는 건 일요일 저녁이었다. 거의 매주였다. 태준은 받았다. 회사는 잘 다니냐고, 밥은 먹었냐고. 태준은 답했다. 잘 다녀요. 먹었어요.

어머니는 수원에 살았다. 태준이 자란 곳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는 거기 있었다. 이사할 돈도 없었고 이사할 이유도 없었다. 태준은 명절에만 갔다. 마지막으로 간 게 추석이었다. 세 달 전이었다. 추석 당일에 갔다가 다음 날 왔다. 하루만 머물렀다.

어머니와 둘이 밥을 먹었다. 텔레비전을 봤다. 어머니가 가끔 아버지 얘기를 했다. 과묵하셨지만 성실하셨다고. 태준이 어릴 때 새벽에 혼자 출근하면서도 이불을 덮어주셨다고. 그런 작은 것들.

그런데 잘 몰랐었다.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는 걸, 이불을 덮어준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는 걸 알았는데 실감이 잘 안 됐다.

열여섯에 멈췄다. 그 멈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몰랐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어디서 왔는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의 추억은 어디에 머무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느끼는 게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것이었다.

핸드폰이 짧은 소리를 냈다. 카톡이었다. 승필이, 경환이가 있는 단톡방. 대학 때부터 알던 친구들이었다.

"상하이 항공권 개쌈 ㅋㅋㅋ 왕복 19만원이래." 승필이었다.

경환이가 바로 받았다.

"정말? 언제 비행긴데??"

"다음 주. 금요일 출발 월요일 귀국."

"고고. 나는 가능."

곧이어 경환이가 링크를 보냈다. 숙소였다. 창문마다 빨래가 널린, 옛날 중국식 빨간 게스트하우스.

"태준이는?"

태준은 단톡방을 봤다. 상하이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여행을 갑작스럽게 떠날 마음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게 정확했다. 화면을 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 회사에서 연차 쓰라고 하던데."

보내고 나서는 왜 보냈는지 몰랐다.

"그럼 너도 가자. 19만원이래. 여행 싫으면 가서 사진이나 찍어. 옛날처럼." 승필이었다.

대학 때는 사진을 찍었다. 동아리를 했고 잘 찍는다는 말도 들었다. 어딜 가든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마. 여행 준비는 우리가 한다." 경환이가 거들었다. "그냥 가서 사진이나 찍어줘, 임마."

태준은 그렇게 상하이 여행에 함께하기로 했다. 경환이가 숙소를 예약했다. 승필이는 맛집 리스트를 공유했고 환전 앱도 알려줬다.

출발 전날 밤이었다. 짐을 쌌다. 캐리어 안에 옷을 넣었다. 카메라도 넣었다. 상하이 날씨를 검색했다. 기온 2도, 비가 올 수도 있음. 우산을 챙길까 고민하다 넣지 않았다.

목도리를 둘렀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 서른한 살짜리 사람이 있었다. 피곤한 눈, 좀 마른 얼굴. 이 사람이 내일 상하이에 간다. 왜.

이유는 없었다. 갈 이유도 없고 안 갈 이유도 없었다. 그냥 단톡방에 대화가 오갔고 승필이가 비행기를 예약했다. 경환이는 숙소를 예약했다. 그래서 간다.

짐을 다 쌌다. 불을 끄고 누웠다. 천장이 어두웠다. 내일이 되면 새로운 곳에 누워 있겠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여기 있을 것이었다. 이 방에, 이 천장 아래.